낙관보다 비관적 전망이 우세한 새해 아침에 시대를 앞서간 그의 예술혼을 다시 생각해 본다.
당시 ‘소년의 모델이 손기정 선수였다는 ‘설이 나돌 만큼 단단한 근육질이었던 점을 감안해.DSLR 카메라 140여 대가 설치된 부스 안에 체조선수가 들어가 ‘소년과 동일한 포즈를 취했고 몸 각 부분의 근육들은 수백장의 사진으로 기록됐다.
두 복원작가는 원작에 도달하고자 가능한 한 자신의 주관을 배제했다.원작자의 제작 방식을 담은 기사와 구술자료.김복진은 인생에 적극적으로 동세(를 끌어들이고).
‘소년을 조각한 1940년은 어린 딸의 죽음이 준 충격과 과로로 인해 김복진이 갑작스레 죽음으로 맞이한 해이기도 했다.『김복진 연구』 (윤범모) 등 후대의 연구서를 분석하여 당시의 제작 방법과 태도에 접근했다.
모델의 나이를 2차 성징이 지난 고교생으로 추정했다.
29일까지)전에서 감상할 수 있다.기우고 기운 누더기 두 벌 세상에 남기고 가신 성철 스님이나 무소유를 강조하신 법정 스님을 생각한다면.
눈이 침침해서 등을 더 환하게 밝혔다.내 생도 장차 쉴 곳으로 돌아가리라(開歲後五日.
빡빡 깎은 민머리가 시리어 망념도 운치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그러니 힘들어도 올해는 희망과 욕망을 버무려 알찬 한 해로 살아내시길 권한다.